
후쉬만드 알리자데(Hooshmand Alizadeh, هوشمند علیزاده)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알리자데 교수는 2005년 영국의 뉴캐슬대학(Newcastle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한 시기부터 쿠르드인들의 도시로서 사난다즈(Sanandaj, سنندج)의 가치를 주목해 도시 조직과 건축 특성을 밝혀온 해외파 건축사학자다. 그는 얼마 전까지 이란 쿠르디스탄대학(University of Kurdistan, دانشگاه کردستان) 건축학과 교수였다. 하지만 2022년에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 مهسا امینی)가 사망하고 나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번지던 시기에 이란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이주한 이후 지금까지 외국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다음달 7월에 그는 ‘쿠르드 문화에서 공간과 장소의 개념(The concept of space and place in Kurdish Culture, مفهوم فضا و مکان در فرهنگ کردی)’이라는 주제의 여름학기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수업은 ‘쿠르드 문화에서 공간과 장소 이해하기’, ‘쿠르드 도시에서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도시 계획을 위한 도시의 형태와 의미’라는 세 개의 세션으로 나뉜다고 계획표를 보여주었다. 그는 첫 번째 세션 준비를 위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연락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쿠르드인들의 고향(welat, ولایة), 자그로스산맥과 타우루스산맥을 중심으로 위치하는 쿠르디스탄(Kurdistan)의 자연환경, 유목생활, 주거공간, 문화유산의 기본적인 특성을 설명한다고 했다.
흥미롭다. 쿠르드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주제일 것 같은데, 외국인 연구자에게 도움을 청한 연유가 무엇일까? 수개월 전에도 테헤란대학의 한 학생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정말 건축연구가 없는 것이냐? 아니면 모르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겠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자들이 활동하고 그들의 성과가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적어도 내가 연구하는 지역에서는 건축사의 여러 분야가 고르게 연구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나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분야의 연구는 더욱 그렇다.
알리자데 교수는 왜 한국어로만 연구성과를 발표하냐며 국문 번역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투정을 부렸다. 테헤란대학의 한 학생도 내 학위논문을 인용하려면 한국어를 잘 아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번역해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국내의 지인들에게 영문으로 성과를 발표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듣긴 했지만, 매번 “언젠간 하겠지”라고 막연한 미래에 그 일을 밀어두었던 것이 두 사람을 투덜이로 만든 것 같다. 밀린 숙제를 하는 것만큼 귀찮은 일은 없겠지만, 나의 이상한 연구가 필요한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봐서라도 이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의 확장인가? 아니면 깊이인가? 연구자로서 생존하기 위해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항상 고민한다.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국 정부와 재단의 시각을 의식해 주저 없이 연구 대상의 확장을 선택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쿠르드 건축에 대한 발표문과 논문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씩 쿠르디스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특정 시기와 지역을 계속해서 연구하는 사학자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한 우물을 파는 그들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만날 때마다 깊어지는 전공 분야에 대한 그들의 통찰력이 부럽게만 보인다. 여전히 무엇을 향해 갈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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