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r Shaliyar Celebration

Pir Shaliyar Celebration at Hawraman Takht, 2018

피르 샬리아르(مراسم پیر شالیار)는 하우라만 타흐트(هورامان تخت)에서 매년 개최하는 역사적인 행사이다. 하우람인들은 피르 샬리아르 행사가 기원전 메디아 제국(ماد)의 조로아스터교에서 기원했고, 이슬람 유입 이후 지금처럼 바뀌었다고 한다. 하우라만(هورامان)은 구석기시대의 거주 흔적 뿐만 아니라 아시리아나 파르티아 제국 시기의 유물이 확인되는 오래된 거주 지역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접근이 어려운 이 산간 지역은 과거부터 최근까지 인근 도시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 외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살아왔던 일종의 피난처로서 작동해 왔다. 이 때문에 조로아스터교 외에도 아흘레 학(اهل حق، یارسان), 알리올라히(علی اللهی), 유대교(یهودیت), 기독교(مذهب)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었다. 20세기까지 지속된 외부 인구의 유입과 지역 내 집단 이주를 고려하면, 구석기인들이 현재 거주민들의 직계 조상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피르 샬리아르는 마르두흐 일가(مردوخ)의 시조인 사이드 무스타파(سید مصطفی), 혹은 아미르 사이드(امیر سید)의 별칭이다. 지아샤(جیاشا)라고도 불리었던 그는 14세기 말에 생전했던 인물이다. 사이드는 악마(دیو)에게 시달리는 병을 앓던 부하라(بخارا)의 공주를 낫게 한 뒤에 그 공주와 결혼했다고 전한다. 피르 샬리아르 행사는 둘의 결혼을 기념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매년 1월말 즈음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누어 주고, 소와 양을 도축하여 고기와 보리로 죽(آش جو)을 쒀서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한다. 3일 동안 피르 샬리아르가 살았던 집 앞에서는 수피승 다르위시(درویش)들이 경쾌한 북소리에 맞추어 손을 맞잡고 술에 취한 듯이 헤드뱅잉을 하며 오른쪽으로 원을 그리며 도는 의식을 거행한다. 이를 보기 위해 작은 마당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4세기 말, 마르두흐 일가의 실질적인 지역 통치가 시작했던 이 자랑스러운 시기에 하우라만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티무르(تیمور گورکانی)의 승전기를 기록한 알리 야즈디(علی یزدی)의 <자파르나마(جفعرنامه)>에 따르면, 1398년 티무르 군대가 투르크멘 군대를 쫓아 하우라만 산(کوه اورمان)에 들어왔다. 그들은 이곳에서 투르크멘인들 뿐만 아니라, 이교도인들(بیدین)을 무참히 죽이고 그들의 성채를 모두 부수었다. 이 기록이 하우람인들에게는 치욕스러울 수 있지만, 티무르 군대의 정복 활동이 고립된 산간이었던 하우라만이 부하라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6세기 전후부터 동쪽의 중앙아시아에서 온 수피들이 하우라만 인근에서 활동했다는 단서들이 확인된다. 19세기부터 인근 쿠르디스탄을 장악한 낙쉬반디(نقشبندی) 수피들은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에서 기원한 사람들이었다. 피르 샬리아르 행사는 금욕주의를 표방하는 다르위시들과 북치고 노래하며 춤추길 좋아하는 하우람인들의 개성이 섞여 만들어낸 지역 문화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몇해 전부터 이러한 지역 행사에 <샤흐나마(شاه نامه)>에나 나올 법한 흰옷을 입은 조로아스터교 사제(مغ)가 등장했다. 그는 흥겨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못하고 어색하게 정면만을 응시한다. 도대체 맥락이 없다. 이러한 촌극은 쿠르드인들이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했던 메디아인들의 후손임을 표현하려는 인위적인 의지와 하우라만의 일부 마을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겠다는 이란문화관광부의 과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산등성이의 좁은 길이 파르티아 시대에 조성되었다고 서슴없이 정의한다. 산 위로 도망가기 위해 만들었을 법한 작은 성채 유적은 사산 왕조의 행정 중심지였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스스로의 과거를 부정하고, 문명세계의 역사에 어떻게든 편입하려는 신분 세탁이다. 근래에 소위 야만적이라 무시받았던 세계와 사람들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사학계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면, 하우라만에 남아있는 모든 흔적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단서라고 억지를 부리기보다는 하우라만의 전통적인 산간생활과 건축들을 보다 가치있게 설명하려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Pir Shaliyar Celebration at Hawraman Takht, 2018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