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J-D: Indicator of the Islamic World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은 모스크다. 아랍어로 M(م), S(س), J(ج), D(د)라는 네 개의 자음으로 쓰는데, ‘엎드려 예배(S-J-D)하는 장소’를 뜻한다. 알라의 계시를 모아서 편찬한 <쿠란(Qur’ān)>에 30차례 가까이 나오는 것처럼, M-S-J-D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사람들에게 계시를 암송한 시기를 거치며 이슬람 전용의 예배 시설이 되었다. 이후 선지자가 죽고 나서, M-S-J-D는 대대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무슬림 제국들의 정복 지역에 세워지며 이슬람이 지배하는 지역, 곧 이슬람 세계를 상징하는 건축적 지표로 거듭났다.

이것의 다양한 건축 특성만큼이나 읽는 법도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다. 이슬람이 탄생한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이를 ‘마스지드(Masjid)’라고 읽는다. 북쪽의 이집트에서는 ‘므스깃(Msgid)’이라고 부르는데, 이 방식이 우마이야조와 파티마조가 도피한 스페인과 아프리카 일대로 전해져 ‘모스크(Mosque)’ 탄생의 기반이 되었다. 이란이 속한 페르시아어권에서는 ‘마스제드(Masjed)’로 읽고, 이웃한 자그로스산맥의 쿠르드인들은 ‘므스키(Mski)’라고 달리 부른다. 튀르키예에서는 ‘메스지트(Mescit)’라고 말하며,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지에서는 ‘메치트(Мечит)’나 ‘메시트(Мешит)’로 축약해 부른다.

이렇게 M-S-J-D를 읽는 방식은 이슬람 세계에서도 문화권마다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이들이 용어의 원래 의미를 변형한 것은 아니었다. 무슬림 통치자들에게 알라의 성스러운 계시를 왜곡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금기이기 때문이다. 선지자 사후에 <쿠란>을 지역마다 다르게 암송한 문제가 불거진 것처럼, M-S-J-D의 다양한 읽기는 광대한 세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역화 과정의 결과다.

이런 이슬람 세계의 동쪽 경계는 중국 대륙과 맞닿아 있었다. 이곳에는 회회인(回回人), 대식국인(大食國人), 파사국인(波斯國人), 색목인(色目人) 등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황제나 왕이 된 사람은 없었다. 당대부터 청대까지 M-S-J-D를 음역한 경우가 확인되지 않는데, 이는 중국의 비무슬림 통치자들이 <쿠란>의 용어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佛教), 조로아스터교(祆教), 마니교(摩尼教), 기독교(景敎)의 시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통치자들은 M-S-J-D를 외국 사신이나 승려가 머무르는 ‘사(寺)’로 규정하고, 역할과 성격에 맞추어 淸眞寺, 淸敎寺, 淸修寺, 淸淨寺, 禮拜寺, 化覺寺, 萬壽寺 등으로 의역해 불렀다.

중국 너머에 있는 한반도에는 어떤 M-S-J-D가 있었을까? <고려사>에 회회인이 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광저우에 남아있는 라마단 이븐 알라앗딘(Ramaḑān ibn ‘Allā‘ al-Dīn)의 묘비처럼 고려 출신의 무슬림을 암시하는 단서도 있다. <세종실록>에 회회인의 의복을 금지했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M-S-J-D의 존재 여부를 알리는 동시대 기록은 확인된 적이 없다. 이능화(1869-1943)가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말한 ‘예궁(禮宮)’이 유일할 정도로 그 흔적이 희미하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무슬림 세력이 미약했고, 그래서 M-S-J-D도 없었다고 단정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여러 학계가 광역적인 범위에서 육상과 해상 교류를 다각적으로 다루는 상황에서 한반도판 M-S-J-D가 발견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직접 찾아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판단을 유보하고, 조금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Choi, N. (Jan. 2026). “M-S-J-D: Indicator of the Islamic World”, Review of Architecture and Building Science Vol. 70, No. 1,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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