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일곱 색깔의 무지개를 믿는 사람들에게
G. Kubler, The Shape of Time: Remarks on the History of Things (조지 쿠블러, <시간의 형상>, 임종현·최남섭 옮김, 서울: 집, 2024)
왜 조지 쿠블러(George Kubler, 1912~1992)는 <시간의 형상(The Shape of Time)>에서 양식(Style)을 무지개 같다고 말했을까?
쿠블러는 미국의 미술사학자이자 선콜럼버스 시대의 아메리카와 이베로아메리카 예술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독일계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양친의 죽음을 비롯한 가정사 때문에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예일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거치며 전문연구자로 성장했다. 그의 연구는 박사학위 논문 <북부 멕시코주의 자이나 도상학>(1940)을 비롯해, <식민지 시대와 미국 점령 이후의 뉴멕시코 종교건축>(1940), <16세기 멕시코 건축>(1948), <고대 아메리카의 예술과 건축>(1962), <테오티우아칸 예술의 도상학>(1967), <포르투갈인의 평원 건축: 향신료와 다이아몬드 사이에서>(1972) 등처럼 유럽 중심의 사관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멕시코, 마야, 잉카, 안데스 등지의 미술과 건축으로 채워져 있다. ‘독불장군(Maverick)’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당시 학계의 주류를 따르지 않고 역사 밖에 있던 지역과 사람의 예술을 고집스럽게 연구한 인물이다.
1962년에 출판된 <시간의 형상>은 특정 시기와 지역 예술의 탐구를 넘어 사물의 역사 전반을 이해하려는 저자의 소견이 담긴 학술서다. 이 책의 ‘머리말: 상징, 형식, 지속(Preamble: Symbol, Form, and Durarion)’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근래의 소략한 문헌 기록에 의존해 예술품의 의미 설명에 집착하는 상징주의적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사물의 시각적 형식이 지속하거나 바뀌는 양상을 살펴서 시간의 다양한 형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을 관통하는 이런 태도는 앙리 포시용(Henri Focillon, 1881~1943)의 유산이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포시용은 프랑스 중세 미술사학자이자 공간, 물질, 정신, 시간의 측면에서 ‘형식의 세계(The World of Forms)’를 설명하려던 형식주의자였다. 그가 말년에 저술한 <형식의 생애(Vie des formes)>(1934)를 영문으로 번역하고(Focillon, 1948), 생전에 마치지 못한 초고를 <천년(The Year 1000)>(1969)이라는 저서로 완성한 인물이 쿠블러다. 이 외에도 쿠블러는 죽음이 임박한 시기에도 ‘앙리 포시용의 가르침(L’enseignement d’Henri Focillon)’이라는 주제로 강연했을 만큼 포시용의 충실한 학생이었고 그의 사조를 계승한 형식주의자였다. 이런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저서가 바로 <시간의 형상>이다.
이 책의 본문은 ‘사물의 역사(The History of Things)’에서 다루는 사물의 성격과 이해 방법을 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만든 모든 사물(Things)은 지속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역사의 유일한 징표로서, 이것의 다양한 역사를 이해하려면 예술가 개인에게 편중된 전기, 지나친 남용으로 의미가 퇴색된 양식이라는 용어, 성장 패턴이 정해져 있는 생물학보다 에너지 생성, 전달, 파동, 중계, 저항, 변환 등을 포함하는 물리학 개념이 적합하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물질(Material)과 정신(Idea)이 결합해 있는 사물의 시간적 변화에서 시대상을 가늠할 수 있지만, 오래전에 만들어진 사물은 과거에 발생한 신호처럼 현재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여러 간섭을 받아 그 변화 양상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역사가는 사물 자체가 가지는 자가신호(Self-signal)와 운동에너지, 중력, 자기장처럼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종속신호(Adherent Signal)를 구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어서 ‘사물의 분류(The Classing of Things)’에서는 사물의 형식과 시리즈의 특성을 살핀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어떤 문제에 대응해서 발생한 형식적 해법이어서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여러 시대의 해법은 특정한 형식-유형(Form-class)을 공유하게 된다. 이것의 순차적 배열로 이루어지는 시리즈(Series)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제 해결의 초기와 후기 단계를 살피고 형식-유형이 반복되는 역사적 네트워크를 확인해야 한다. 이와 같은 형식의 순서 배열은 처음에 만들어진 진품(Prime Object)과 이후에 대량으로 파생되는 복제품(Replications)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시리즈의 확장과 완성 과정을 확인하려면 상대적 시간과 위치를 살피는 체계적 연대(Systemic Age) 측정법이 유용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음으로 ‘사물의 확산(The Propagation of Things)’에서는 발명, 복제, 폐기를 차례로 다룬다. 그에 따르면, 발명(Invention)은 일종의 변이로서 기존 관념과 상관없이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적 발명과 기존 관념에 구속받는 실용적 발명으로 나뉜다. 이렇게 발명된 원본 혹은 진품은 시리즈를 시작하고, 이를 모델로 삼아 조금씩 다르게 대량생산되는 복제품은 시리즈를 유지한다. 저자는 발명보다 복제가 지배적인 이유는 우리가 일상적 의무, 전통, 관습에 묶여서 과거를 반복하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사물의 폐기(Discard)가 지속 기간의 끝과 밀접하다고 언급하며, 실용적 사물은 새로운 발명품의 등장과 함께 빠르게 폐기되지만, 예술품처럼 유희적 사물은 익숙해지면서 느리게 폐기되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지속의 몇 가지 유형(Some Kinds of Duration)’에서는 사물의 형식과 시리즈가 지속하는 다양한 양상을 살핀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예술가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누고 각 유형의 예술가가 형식의 순서 배열에 진입할 수 있는 적합한 사회 조건을 설명한다. 이어서 그는 예술가의 실질적 활동 기간을 준비기, 초기, 중기, 성숙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가 지속하는 15년 단위(Indiction)가 체계적 연대 측정에 유용하다고 말하며, 실제로 이를 가지고 여러 시기와 지역에서 60년씩 지속한 형식의 구축 단계와 사회적 공유 단계를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간헐적 유형, 완성되지 못하고 정지된 유형, 유럽에서 식민지로 확장된 시리즈, 로마네스크-고딕-중세 후기 건축처럼 발명의 중심지가 불규칙하게 바뀌는 시리즈, 하나의 예술품에서 다수의 형식-유형이 동시에 발생하는 시리즈도 소개하며 제각각의 길이와 속도로 지속하는 시간의 형상을 의식적으로 정렬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시간의 형상>이 아직 유효한 이유가 ‘결론(Conclusion)’에 있다. 여기서 저자는 앞으로 사물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수주의처럼 과거의 신호를 제한하지도 말고, 도상 해석학이나 형태학처럼 의미와 형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말아야 하며, 양식이라는 퇴색된 용어에도 의지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양식을 가리켜 무지개처럼 특정 조건과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과 같다고 말한다. 그에게 무지개는 서양미술사나 한국건축사처럼 임의로 상정한 지리적 범위에서 단선적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기의 대표 양식을 설명하는 관습적 역사다. 그에 따르면, 이는 환상이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되고 반세기 정도가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보처럼 시대를 구분하고 각 색깔의 양식을 설명하는 역사에 익숙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관심 가지지 않았던 대상과 지역으로 확장해 사물의 형상을 살펴야 하고, 특정 시기와 지역에서 나타난 어떤 사물의 독특성이 아니라 초기와 후기 형식으로 구성되는 시리즈의 보편적 특성을 통해 사물의 다양한 역사를 밝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저자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지금 국내의 건축사학계가 이런 무지개를 좇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한국건축사를 보편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문명교류라는 말도 꽤 자주 사용되었다. 이 때문인지 한국건축은 한반도의 고유한 건축에서 점차 한·중·일의 동북아시아 문화권, 한자와 유교문화권, 적층식 목가구조 문화권처럼 확장된 지역의 건축과 함께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조만간 더 먼 아시아나 다른 대륙의 건축과 비교하며 한국건축을 설명할 수 있게 될까? 이를 위해서는 상대지역의 건축 전통과 역사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상 시기와 지역이 편중되고 있는 최근의 연구 경향을 생각하면 이는 요원해 보인다.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초기와 후기 형식으로 구성된 시리즈가 복잡하게 얽힌 다원적인 현재의 개념만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도 사견이라고 말한 것처럼, 지금 그의 책이 가지는 더 중요한 의의는 구체적인 방법론 외에도, 관습, 전통, 타성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건축사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라는 충고와 건축사를 새롭게 이해하고 설명해 보라는 격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쿠블러의 저서가 <시간의 형상: 사물의 역사를 분류하는 몇 가지 방식에 관한 생각>이라는 국문 번역서로 출판되었다. 이에 다양한 지역과 시대의 미술, 건축, 예술가, 건축가, 이론가를 예시로 들며 설명하는 저자의 의도를 다소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형상(Shape)’, ‘사물(Things)’, ‘순서 배열(Sequence)’, ‘시리즈(Series)’, ‘형식(Form)’, ‘형식-유형(Form-class)’, ‘지속 기간(Duration)’처럼 독자마다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어는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또한, 저자가 실제 말하는 것처럼 풀어서 설명하는 긴 문장을 적당하게 나누어 번역하고, 그가 즐겨 사용하는 시적 표현을 이해하기 쉽게 의역한 부분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번역서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저자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건축사를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앞으로 쿠블러의 생각에 공감한 학생이나 전문연구자가 등장해 ‘독불장군’처럼 도전적으로 연구한다면 한국건축을 폐쇄적인 일국사가 아니라 국경 너머의 다양한 지역 건축과 함께 보편적인 시각에서 설명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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